김용근의 미술기행- 담양 담빛예술창고 미술관
오랫동안 역할을 다하여 방치되고 있던
옛 양곡 보관창고(남송창고)는 2014년에
폐산업시설에 대한 문화재생사업의 융합적
창의성을 통해 지역민과 방문객들의 휴식과
문화 및 전시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오늘날 별 쓸모없이 남아 있던 공간을
개조하여 멋진 예술창고인 미술관으로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인간을 만드는 상호성으로서 정신과 장소는 늘 역사적으로 탄생하고 소멸시켜 왔다. 즉, 인간의 정신과 장소의 공간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도에 의존하여 왔다. 사용의 용도에 의해 탄생하고 소멸되고, 용도 변경으로 재탄생하곤 하였다.
이처럼 어떠한 일이 일어나거나 이루어지는 인공의 장소가 되는 공간이 바로 건축이다. 쓸모없음의 시선으로 보는 건축은 헐고 버려 이전 역사성과 지속성을 제거하고, 새로운 프레임의 정신과 공간을 만들어 역사 응답에 단절의 벽을 세운다.
한편 제거의 단절이 아닌 다듬고 재활용하여 지속적 유지의 공간은 지나간 역사에 응답과 동시에 새로운 정신이 공존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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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두 경우, 개도국은 새로움에 가치를 두어 쓸고 없애고 새로 세우는 것에 집착하는 반면, 선진국에서는 남기고 고쳐서 지속성과 역사성에 가치를 두고 있다.
이런 고민의 대표적 사례가 20C 들어오면서 미국의 시카고시의 대형 화재 이후 쓸고 없애는 대형 고층건물의 등장으로 새 프레임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반면, 2차 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의 재건에서 많은 도시들은 그전에 살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건에 동참하여 도시와 마을의 역사성을 지속 시켰다.
우리는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오래되고 낡은 건물은 재개발 우선주의에 의해 헐고, 쓸고, 버리는 시카고형 단절의 재건을 선택하여 새로운 것으로 둔갑시켰다. 광주의 경우 일제 강점기 이후 광주읍성터가 사라진 이후, 현재는 50년 이전의 공공성 건물은 사라져 더 이상 지속성이 없는 그곳이 그곳 같은 도시가 되고 말았으며, 겨우 양림동과 발산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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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국의 테이트 모던과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지역에서는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모습을 통해 그 역사성과 지속성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오늘날 영국인에게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관을 물으면, 대영박물관이나 런던의 여러 뮤지엄이 아니라 대부분 테이트 모던 뮤지엄(Tate Modern Museum)을 꼽는다. 그러나 테이트 모던에 가보면 오래된 화력발전소의 모습만 보인다. 이 발전소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진 화력발전소로 1981년에 공해 문제로 가동이 중단되어 20년 동안 흉물이 되어버렸다. 이 화력발전소는 2000년에 디자인 공모를 통해 건물의 기존 외관은 손대지 않고, 내부만 미술관의 기능에 맞춰 바꾸는 도시재생의 성공사례가 되었다.
이렇게 리모델링한 테이트 모던은 한해 5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새로운 명소로 탈바꿈하였다. 이처럼 리모델링 하나로 과거 런던 도시에 대한 공해의 이미지의 역사 위에 문화의 이미지로 분위기가 전환되었고, 지속성 그 자체로 역사성을 느낄 수 있다.
다행히도, 최근에서야 우리나라의 많은 지자체들이 이를 인식하여 기존 건축을 다듬어 고쳐 쓰는 공공의 장소공간을 유지하여 지역의 문화적 자산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인식의 결과는 서울 문래동의 철공소가 예술촌으로, 청주 연초제조 공장이 예술 전시공간으로, 전주 공업단지가 팔복예술 창작지구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번 미술기행지인 담양은 있는 그대로의 지속하는 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강가에 정자를 짓고 시를 짓는 문화, 가장 많은 정자가 남아있고, 가사문화, 죽림의 자연, 소쇄원의 정원, 거대한 400그루 관방제림 등, 지속하는 역사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의미 있는 보존의 역사성 유지와 현대성을 결합하는 일이 있다. 담양 분지는 쌀 생산의 중요 지역으로 대형 양곡창고가 남아 있다. 오랫동안 역할을 다하여 방치되고 있던 옛 양곡 보관창고(남송창고)는 2014년에 폐산업시설에 대한 문화재생사업의 융합적 창의성을 통해 지역민과 방문객들의 휴식과 문화 및 전시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오늘날 별 쓸모없이 남아 있던 공간을 개조하여 멋진 예술창고인 미술관으로 역사성을 유지하게 탈바꿈 한 것이다. 광역도시의 큰 미술관 보다 더 많은 관람자가 찾아오고 있다. 이는 바로 없애고 새로 만든 미술관보다 그대로 유지하고 역사에 응답하는 건축의 역할이 더 큰 몫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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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술관의 정식 명칭인 '담빛예술창고'는 옛 미곡창고 건물을 미술관 용도에 맞게 재생하여 건물이 상징하는 역사적 의의와 현대적이며 동시대적인 문화적 의의를 재현하는 것이며, 건축물의 재생으로 새로운 문화 공간을 재구성하는 성격을 갖는다.
목적지 미술관인 담빛예술창고에서는 '미식가들의 만찬'이라는 타이틀로 먹거리 음식과 관련된 소재로 작품화하는 7명의 작가군의 전시가 열렸다. 이 전시에 대해 김옥향 큐레이터는 "맛을 분별하는 특별한 능력과 함께 자신만의 노하우로 선별한 식재료를 다루고 완성된 요리를 담아내는 쉐프들과 같이, 작가들은 각자가 의미를 두고 있는 작품 소재를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은유, 상징, 역설 등의 다양한 표현법으로 작품화했다"라 말한다. 7명의 작가가 미식의 표상으로 각자의 언어로 회화와 오브제를 통해 만찬장을 만들어 냈다.
주제어인 '미식'에서 미자는 맛의 미(味)가 아니라 아름다울 미(美)자 이다. 이는 맛있는 것을 먹는 사람이 미식가가 아니라 미(美)의 원뜻인 '좋음', '쓸모있음'을 의미한다. 진선미가 분화되지 않던 시대는 하나의 의미로서, 아름다운 것은 '좋은(善)' 것이다. 그래서 사전에도 "아름답다와 좋다는 같은 뜻이다"라 하고 있다. 그래서 미식이란 맛이 좋은 것만 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도 '미와 선은 본시 같은 것으로 표현만 달리한 것'이라고 하여 동양적 개념과 같게 언급 하였다. 그래서 좋은 것은 아름다운 것과 통하고,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과 통한다. 좋은 것은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쓸모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시에 참여하는 7명의 작가들을 미식에 대해 50여점의 각각 작품에서 공감과 관점의 차이를 회화, 사진, 설치 작품을 통해 만찬의 상에 올려놓았다.
김문영은 인간에 의해 먹고 남겨진 홍합껍질에 새 생명의 상징인 태아 조각을 집어넣은 입체 이미지는 우리의 경험과 기억의 축적에서 꺼낸 예상의 이미지와 충격적인 충돌을 일으키게 한다.
이것은 인간이 먹고 남긴 껍질 속에 다시 생명을 넣어 생명에 대해 재해석하게 만든다. 그래서 생명은 층층이 겹겹이 다른 생명의 죽음 위에 싹튼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임안나는 '로맨틱 솔져 Romantic Soldier' 시리즈의 사진작업을 통해, 욕망의 인스턴트 식품의 상징적인 아이스크림, 솜사탕, 팝콘, 케이크 등을 대상으로 치열한 전쟁을 보이기 위해 미니어처 병정들을 등장시켜 싸우게 한다. 이는 건강식품과 자본사회에서 교환가치를 극대화한 가공식품에 맞선 전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최현주는 먹은 요리와 과일을 2중 구조화를 통해 미식의 탐을 집중시키고 있다. 즉, 수많은 계란프라이를 조합 시켜 호박 모양의 새로운 구상을 만들어 내듯, 대상의 먹을거리 속에 다른 여러 먹을거리를 배열시켜 먹을거리의 본질이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의 일상적 기억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새로운 주체를 이중으로 구성하여 새로운 사물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루.K의 작업 세계는 동양 전통산수화 속의 소재를 채소와 과일을 배치하여 새로운 현대적 이질적 시각으로 전환시켜 재구성한다. '산수를 담다 사각도시락' 작품은 이와 같이 자연과 자연의 산물을 연결하고 결합하여 친근하고 유희적으로 재해석하였다. #그림4중앙#
황정후는 과일과 채소를 속의 본질과 겉의 껍질을 다른 종류로 이질화 하는 구성의 아이디어로부터 서로 다른 속과 겉을 조합한 사진 작업을 보여 준다. 그는 과일과 야채의 이중적 장치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다양한 사물의 속성을 얘기하고자 한다.
허보리는 인간의 긴 역사 이래 생존을 위해 사냥하고 가축화를 통해 얻어 낸 고기 육류에 대한 욕망을 니들드로잉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육류의 살과 지방이 어울려 만든 마블링화된 돼지목살, 삼겹살, 채끝살 등의 단면의 추상적 미와 욕망의 식품이 중첩화된 이미지를 우리에게 선택하게 만든다.
홍상식은 마른국수의 한 묶음에서 한 가닥씩 넣고 빼내어 전체 묶음이 입체적 입술 모양 조각으로 만들어 설치작업을 하여, 탐욕의 입을 통해 생존의 본능을 표현 한다,
이곳 담양 담빛예술창고의 공간은 두 개의 공간을 2층에서 연결시켜 크게 4개 공간으로 설계하였다. 2개의 집중 전시실, 1개 전시 겸 휴게실, 마지막 1층 공간은 카페와 전시 및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뒤뜰은 수백 그루 관방제림의 숲과 어울리게 위치하고 있어 멋을 더 한다.
담빛예술창고와 같은 공공적 공간은 자신과 타인을 분리하는 사적 영역성이 아니므로 우리라는 마을, 역사, 문화 등이 가치가 지속되어 나와 교감하고 동행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문화가 일상과 분리가 아닌 공적 목적의 지향점과 같이 존재하게 한다.
문명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존의 것을 쓸어버리고, 새로 세우고, 키우고, 넓히는 남성주의적 이데올로기로 이어져 왔다. 그래서 권력의 상징으로서 랜드마크적인 건설은 문화적 경험의 축적이 아니다. 이제는 힘이 표출된 시각적 표상으로부터 탈출하여 다듬고 고쳐서 역사적 지속성을 유지해야 문화의 연속성도 살아날 수 있다. 김용근 동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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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근은
전남대 물리학과 출신으로 28세에 동강대 교수로 임용돼 창업보육센터장, 교수학습개발원장, 도서관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전공을 전환해 인문사회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대중강연을 전개하고 있다. 과학철학, 인문-예술-과학 융복합, 뇌과학 등의 대중 강의를 하고 있다. 학림학당을 창설, 인문학 보급운동을 펼치고 듣세뮤직카연구회를 통한 음악보급, 교육부 인문도시사업을 통한 융합인문학 보급 등을 전개하고. 화가로도 활동하며 미술평론 등으로 학문 간 융합화 운동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